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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는데 잔치국수를 먹었다?

이우근 취재국장 | 기사입력 2018/07/26 [07:20]

사람이 죽었는데 잔치국수를 먹었다?

이우근 취재국장 | 입력 : 2018/07/26 [07:20]

▲ 이우근 본지 동해안 취재 국장    

너무 많아 지면에 다 옮길 수 없는 수많은 비유들이 그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는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어록제조기였다. 번뜩이는 재치와 걸죽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고 울렸던, 평생을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헌신하며 진보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왔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우리 곁은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런 황망한 소식에 사람들은 비통에 빠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노 원내대표의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중들의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제와 같았다. 달변가인 그는 해박한 지식은 물론 유머와 위트 있는 입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복잡 난해한 사건과 이슈를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촌철살인의 비유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삽결살을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머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 대장균 단독 범행이다‘라고 얘기하는 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 각 정당 관계자 등 정치권, 각계각층의 애도 물결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가 하면, SNS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하다. 정치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시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많아온 노 원내대표이기에 이 같은 추모의 정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 원내대표가 일궈낸 정치적 공적은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 없다. 그는 평생을 노동과 진보적 가치를 위해 투쟁해온 진보정치의 산증인이자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노 원내대표는 진보정당의 대중화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온 인물이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척박한 진보정치의 싹을 틔우기 위해 매진해왔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제1야당인 한국당과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지지세가 확장된 데에는 노 원내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노 원내대표는 정계 진출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진보정치의 토양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경주해왔다.

 

대중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교감하며 진보정당의 대중화를 선도해왔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노회찬의원의 죽음 앞에 좌파척결 기념일이라면서 잔치국수를 먹었다면서 고인을 조롱했다. 이는 노회찬의원이 박근혜가 탄핵 당했을 당시 촛불혁명의 성공이라며 잔치국수를 먹은 것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 얼마나 인성을 피폐화 시키는 지 보여주는 예이다. 박근헤의 탄핵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잔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노회찬의 죽음이 그 국회의원이 속한 정당에 잔치라도 된다는 말인가?

 

노회찬의 빈소에 국민들의 조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왜 그 보좌관이 속한 정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적장의 죽음 앞에서는 조롱을 하지 않는 법인데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패륜적이 되었을까? 저런 조롱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포장 되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패륜적인 저런 발언에 까지 보장 되지 않는다. 발언에 있어서 명예훼손 또는 모욕의 방식을 취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죄 또는 모욕죄가 성립한다. 저 국회의원 보좌관 뿐 많이 아니다.

 

이건 표현의 자유도 뭐도 아니고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부당한 폭력에 저항한다면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독해서 쟁취하려는 권리는 무엇인가? 아무리 주장이 타당하다고 해도 그 방법이 치졸하다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또한 일베를 지난 정권의 여당인 새누리당의원은 일베가 건전한 보수라고 했었고 일베회원을 초청한 국정원과 사이트에 광고를 실어준 고용부도 일베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었다. 한마디로 이명박근혜정권이 일베를 업어 키운 꼴이다.

 

일베 패쇄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베는 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조롱하고 모독 하던 자들이 자기들이 불리 할 때는 민주주의의 등 뒤에 숨겠다고 하는 모습. 참 아이러니 아닌가? 민주주의의 적에게 민주주의는 등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 5.18광주민주항쟁희생자에 대해서 사진을 올려놓고 홈쇼핑이라 하고 희생자 관을 보고 택배배달이니 모독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일베나 워마드나 국회의원 보좌관이 지금 문제시 되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정치적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사자에 대한 모독과 반인륜적인 표현들이 문제시 되는 거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모든 것이 무제한 허용되는 방종이 아니다. 그런 자유는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에나 존재하던 자유다. 자유를 자유당 시절의 무조건적인 자유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사람의 죽음 앞에 태도는 이념이전에 사람이라면 좌우를 떠나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일 것이고, 유족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를 만난 적은 없다. 심지어 먼발치에서조차 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늘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면 반갑게 안부 인사라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만큼 그는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사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TV-라디오-신문-팟케스트 등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의 부재가 믿겨지지 않는 이유가, 수많은 정치-시사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그는 섭외대상 1순위 중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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