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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출두요

이우근 취재국장 | 입력 : 2018/12/26 [14:28]

▲ 이우근 본지 동해안 취재 국장    

정체를 감추고 있던 슈퍼히어로처럼 등장해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암행어사의 멋진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익숙하게 보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멋지게 나오는 암행어사들의 활동은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 고된 일이었다. 임금이 직접 내린 암행어사 업무지침서인 사목은, 도남대문외개탁(到南大門外開坼) 숭례문을 나가 한양을 떠나기 전까지는 열어보지도 못해 자신이 살펴야 하는 감찰지가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길을 떠나야 했다.

 

철저히 신분을 감추고 사람들 속에 숨어 감찰을 진행했는데, 혹여 감찰 대상인 지방 관리에게 정체가 발각된다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유명한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는 암행어사 시절 처벌한 관리들의 미움으로 인해 훗날 정치보복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고종 33년(1896년) 74세의 2품 암행어사 장석룡의 보고서를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암행어사는 백성들이 삶 속을 직접 들어와 낮은 자들의 설움과 굶주린 자들의 고통을 직접 살핀 사람들이었다. 1822년 평안남도 암행어사 박내겸의 일기 중에 나온 내용이다.

 

김태우 논란을 보면서 불현 듯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김태우의 발언을 마치 성경이라도 되는 듯이 무조건적으로 언론이 신봉하여 보도 하고 그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도 되는 듯이 야당이 덥석 받아서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다.

 

이 환상의 3각 편대를 어디서 본 듯하지 않는가? 그렇다. 드루킹 때도 이랬다. 언론과 드루킹과 야당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고 특검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정치브로커의 입에 야당과 언론이 놀아났다는 것을 증명했었다. 아니다. 놀아나는 척 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입으로 중얼 거렸지만 속내는 오로지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도 언론과 야당에게 드루킹의 말은 의심 없이 받아 들어야 하는 복음이고 드루킹의 옥중서신은 경전이 되어었다. 언론은 신의 목소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문자로 적어 알려야 하는 사명이라도 있는 듯 했었다.

 

언론이 전하는 신 드루킹의 목소리는 신자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되어었다. 드루킹이 신이니 드루킹의 말과 상반되는 주장을 하면 이교도(異敎徒)가 되어 죽어야 할 대상이 되어었다. 증거는 없고 오로지 드루킹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특검을 했었고 결과는 뭐. 지금도 그렇다. 김태우의 주장을 반박하면 언론과 야당에게는 신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교도가 된다.

 

드루킹 이전에 김기식 때도 언론은 똑 같은 행태를 보여었다. 일단 좌표를 찍으면 개떼같이 몰려들어 물어뜯어 제친다.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건 내 알바 아니다라는 것이 언론과 야당의 태도이다. 야당과 언론이 자신들에게 달리는 악플은 비판하면서 그 악플을 언론과 야당은 기사와 논평이라는 방식으로 공공연하게 달아 대고 있었던 것이다.

 

드루킹 논란에도 그랬듯이 이번 김태우 논란도 정확한 팩트는 없고 언론이 늘 그러하듯이 카더라로 논란을 키우고 야당이 주워 먹고 다시 배설하고 그 똥을 언론이 다시 주워 먹는 방식으로 무한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언론과 야당의 생존방식이라면 참으로 허접하고 처량하다.

 

성완종의 유서조차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던 언론이 드루킹의 옥중서신은 성경처럼 받들어 모시더니 지금도 언론과 야당에게는 김태우는 드루킹에 이어서 새로운 선지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평양 관찰사의 잔치를 구경하다가 몽둥이를 들고 온 감영 아전들에게 백성과 함께 쫓겨났다. 관청으로 들어가 굶주린 자들을 구하기 위한 죽사발을 받아들였다.

 

백성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고통과 슬픔을 보고 들었던 암행어사들은 바로 임금의 눈과 귀였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어디에 있어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헤아림은 비단 지도자들만의 덕목은 아니다.

 

자신의 배우자나 자식을 대할 때, 친구를 만날 때, 동료와 일을 할 때, 역시 그들의 눈높이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약용 선생님의 말습중 배고픈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정치의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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