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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총리 아베의 패착

이우근 | 입력 : 2019/08/06 [09:23]

▲ 이우근 논설위원

한국이 꼿꼿해 놀랐을 것이다. 아베의 잘못된 결정이 나쁜 타이밍에 이뤄졌다. 아베 일본 총리의 오판 탓이다. 일본은 중국과 맞서려면 껴안아야 할 한국을 밀어내는 전략적 패착을 하고 말았다. 아베 총리는 급소를 맞고 무릎을 꿇을 줄 알았던 한국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적 정서가 디폴트로 장착돼 있다는 사실을 몰은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65년 체제의 동요가 최근 한일 갈등의 근본 배경이다. 65년 체제의 두 축 중 하나였던 반공을 대체할 양국의 전략 이익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질서라는 기대감을 일본 시민 사회에 심어줄 수 있도록 공공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잖아도 지난달 초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강화가 점화한 한국 시민 사회의 반일 캠페인에 8월2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강행이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아베 총리가 전쟁을 걸었을 때 계산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민족주의적 정서가 기본 사양, 즉 디폴트로 장착돼 있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와 주변 전략가들은 몰랐을 거다. 식민 지배라는 수치스러운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우리 역사교육의 결론이다.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집단 기억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착근됐다. 수면 아래에서 통제돼 오던 정서가 아베 정부의 도발로 격발되는 바람에 수면 위로 올라온 거다. 북-중-러, 특히 두려운 적으로 부상 중인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진영을 꾸리려면 불편해도 한국을 껴안아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밀어내버리며 전략적 부담을 키웠다.

 

박근혜 정부에게 하던 이웃나라 길들이기 또는 과거 합의를 뒤집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풀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베 총리는 나라 바깥 적의 존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국내 정치적 이익을 챙겨왔다. 오래 집권하며 자기 과신이 생긴 듯하다. 급소를 치면 한국이 무릎을 꿇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엎드리기는커녕 더 꼿꼿이 일어서니 적지 않게 놀랐고 있다. 지금 한일관계를 파국 직전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아니다. 65년 체제 이후 프레임워크의 설계를 시작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패전국인 일본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국제관계에 복귀하던 1945년 당시 한일 간에 외교 관계가 성립해야 했는데, 두 축이 역사 청산과 반공이었고, 65년 체제는 두 축이 결합한 결과다. 애초 역사 청산 축은 불안했다. 일제 식민 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합의하지 못하고 양측이 각기 해석을 달리하게 내버려둔 채 봉합해버린 결과였다. 다른 한 축인 반공은 90년대 탈냉전으로 붕괴했는데, 이후 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찾지 못했다.

 

어차피 불거질 갈등 이었다. 위기는 기회다. 한국은 새로운 양국 연대 관계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역사 청산의 종착지는 역사적 화해다. 국제정치에서 화해의 시작은 가해자-피해자를 나누는 일이다. 때문에 한일 간 화해는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아베 정권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화해로 가는 과정에서 갈등-위기-봉합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외교적 관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환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미-일 진영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현재도 미국보다 일본이 강하다. 중국과의 대결 구도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립하려는 게 아베의 전략이다. 그러나 신냉전으로 한반도에 진영 구도가 다시 만들어지면 한국이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협착 구조를 어떻게 탈피하느냐가 향후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다. 아베는 한반도 평화 공존에서 시작될 동북아의 평화 질서가 양국의 경제-정치적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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