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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의 병풍, 대구로 오다

이성현 기자 | 기사입력 2020/12/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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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의 병풍, 대구로 오다
기사입력: 2020/12/01 [15:58]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이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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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대구】이성현 기자=대구시는 일제강점기 이상화 시인과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병풍 한 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고 1일 밝혔다.

 

대구시에 기증되는 병풍은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1903-1978)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병풍의 마지막 폭에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1901-1943)가 포해 김정규(1899-1974)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화 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다.

 

병풍 공개 행사는 12월 3일 오전 10시 30분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며,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과 기증자 김종해(원 소장자 아들), 이원호(이상화기념관 관장), 대구미술관장 등이 참석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병풍 기증과 함께 감사패 증정이 이어진다.

 

병풍을 대구시에 기증한 김종해(1938년 대구출생) 씨는이상화 시인으로부터 이 작품을 선물 받아 소장했던 포해 김정규의 셋째 아들이다. 김종해 씨는 생전에 선친께서 소중하게 여기셨던 이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대구시로 연락했고,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즉각 작품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기증 절차를 밟았다.

 

이상화는 근대기 민족시인이고, 죽농 서동균 또한 잘 알려진 근현대기에 걸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수묵화가이다. 포해 김정규는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이었다. 일본에 유학해 주오(中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 활동도 한 민족 지사이다.

 

1932년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 서동균은 30세, 이상화는 32세, 김정규는 34세의 청년으로 각각 두 살씩이 차이 나는 또래였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젊은 엘리트였으나 이들이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었다.

 

이 병풍은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 막역한 사이였고,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증정 받을 만한 인물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로 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사건에 연루돼 대구 경찰서에 구금됐고, 활동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김정규는 1920년대 항일운동으로 2년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고 신간회 활동에도 관여했다.

 

김종해 씨는 “선친께서는 상화 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이라고 지극히 아끼셨다. 병풍을 보며 금강산 구곡담 시를 직접 따라 쓰기도 할 만큼 좋아하셨다. 1974년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집에서 소중히 보관해오다가, 상화 시인의 고향인 대구가 이 작품을 보관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대구시에서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락했다”고 말했다.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일제강점기인 근대기 대구가 보유한 최대의 자산 중 하나인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 교유 관계, 문화 활동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상화와 관련된 스토리로 근대의 문화 지형을 충실하게 확장하고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이상화에게 직접 이 작품을 선물 받은 포해 김정규 선생의 아들이 선대의 교류를 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를 찾아 기증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병풍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면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증을 계기로 근대기 예술가들의 교류, 독립운동 관련 연구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구글번역기로 번역한 기사 전문이다.>

 

 Poet Lee Sang-hwa's folding screen comes to Daegu


[Break News Daegu] Reporter Lee Seong-hyun = Daegu City announced on the 1st that a folding screen containing the stories of artists who had exchanged mainly in Daegu with poet Lee Sang-hw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ill be donated to Daegu City.

 

The folding screen donated to the city of Daegu is a 10-fold folding screen containing “Gogokdam Poetry in Mt. Geumgang”, and is a calligraphy work written by Seo Dong-gyun (1903-1978) as a haengcho. In the last width of the screen, there is a written message written by Dong-gyun Seo in 1932 and presented to Kim Jeong-gyu (1899-1974) by the poet Lee Sang-hwa (1901-1943). It is a rare example of a calligraphy work that clearly recorded the story related to the year of production.

 

The screening public event will be held at 10:30 am on December 3 at the Daegu Museum of Art, and Daegu City Administration Vice Mayor Chae Hong-ho, donors Kim Jong-hae (son of the former owner), Lee Won-ho (director of Lee Sang-hwa Memorial Hall), and the director of the Daegu Museum of Art will attend. At this event, a plaque of appreciation is presented along with a donation of a screen.

 

Kim Jong-hae (born in Daegu in 1938), who donated the folding screen to Daegu City, is the third son of Pohae Kim Jeong-gyu, who received this work as a gift from poet Lee Sang-hwa. Kim Jong-hae decided to donate this folding screen, which was cherished by his father in his lifetime, to Daegu, the hometown of Lee Sang-hwa, and contacted Daegu City directly, and the Daegu City Culture and Arts Archive team immediately checked the work and went through the donation procedure quickly.

 

Lee Sang-hwa is a national poet in the modern era, and Dong-gyun Seo is also a representative calligrapher and ink painter in Daegu who was active throughout the modern and well-known period. Pohae Kim Jeong-gyu, from Hapcheon patrol, worked in Daegu and was a member of the Daegu Labor Mutual Aid Association in 1924. After studying in Japan, he studied at Chuo University and Meiji University, led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was also a governor of the nation.

 

When this folding screen was produced in 1932, Seo Dong-gyun was 30 years old, Lee Sang-hwa was 32 years old, and Kim Jeong-gyu was 34 years old. These were all young elites of Daegu who did not lose their national spirit during the dark period of the loss of the count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ut the fact that they were intimate was not known in detail.

 

Lee Sang-hwa and Lee Sang-hwa had a great relationship with Seo Dong-gyun enough to ask for a masterpiece of 10 widths, and Kim Jeong-gyu is a person who deserves such a masterpiece from Lee Sang-hwa. Lee Sang-hwa is a publishing secretary of the Shinganhoe Daegu branch, and was imprisoned at the Daegu Police Station for being involved in a case to raise funds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

 

Mr. Kim Jong-hae said, “My father loved the screen as a gift from the poet Sang-hwa. He liked it enough to write along the poems of Gugokdam on Mount Geumgang while watching the folding screen. Even after my father died in 1974, I kept it at home, and I thought that Daegu, the hometown of Sanghwa poet, was the place to store this work, and I contacted after hearing the news that Daegu City was building a culture and art archive.”

 

Calligraphy researcher Dr. In-sook Lee (adjunct professor at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said, “This screen is important in that it is a relic that informs Lee Sang-hwa's thoughts about the country, relations, and cultural activities, one of the greatest assets held by Daegu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clear that this is an important work that can faithfully expand the modern cultural landscape with a story related to Lee Sang-hwa and enrich the narrative of the characters who were active in Daegu in the modern era.”

 

Chae Hong-ho, the vice mayor of Daegu City's administration, said, “I would like to thank the son of Pohae Kim Jeong-gyu, who received this work directly from Lee Sang-hwa, for visiting Daegu, the hometown of Lee Sang-hwa, and donating it with a pure heart in honor of the exchange of his predecessors. I think there will be a lot of talk if you unravel the story of this folding screen. With this donation, I look forward to continuing research on the exchange of modern artists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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