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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대구경북

대가야 왕릉(王陵)의 출현(出現)

대가야박물관, 1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기획특별전

김형만 기자 | 기사입력 2014/01/21 [15:00]

대가야 왕릉(王陵)의 출현(出現)

대가야박물관, 1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기획특별전
김형만 기자 | 입력 : 2014/01/21 [15:00]
고령군(군수 곽용환) 대가야박물관이 1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기획특별전 ‘대가야 왕릉(王陵)의 출현(出現)-지산동 73호분-’을 개막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최근 발굴 조사된 지산동 73호분이 지산동고분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최초의 왕릉으로, 대가야 왕릉의 출현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말했다.

▲    내부전경  © 김형만 기자

고령은 지금으로부터 1천600여년 전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 축을 이뤘던 대가야의 옛 도읍지로, 고령읍을 둘러싸고 있는 주산의 능선 위에는 대가야시대의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 700여기가 줄지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로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대가야 최대의 중심 고분으로 무덤의 숫자와 규모, 껴묻거리의 우수성에서 가야지역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고리자루칼  © 김형만 기자

최근에는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진정성‧완전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서기 400년을 전후해 고구려의 남진(南進)으로 금관가야가 몰락하지만, 대가야는 야로지역의 철산지를 확보하면서 강력한 무력과 농업생산력을 발전시켜, 가야 사회를 주도하는 대(大)가야로 성장했다. 

지산동고분군은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400년경부터 56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져,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을 오롯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지난 2007∼8년에 걸쳐 발굴조사 된 지산동 73호분은 무덤 내부가 나무덧널로 이뤄진 대형 봉토고분으로 확인됐다. 

▲     관모장식  © 김형만 기자

이 고분은 지산동고분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최초의 왕릉으로, 대가야에서 왕릉이 본격적으로 출현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삼국과 구별되는 대가야만의 독특한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대가야박물관은 2013년 3월에 지산동 73~75호분에서 출토된 껴묻거리 1천700여점을 전량 인수해 보관‧관리하고 있으며, 이는 고령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고향에 돌아온 것으로, 대가야 유물의 귀향(歸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획특별전에서는 400년 경 대가야 왕릉의 출현기에 만들어진 ‘최초의 대가야 왕릉’인 지산동 73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했다. 이를 통해 출현기의 대가야 왕릉은 어떤 모습이며, 그 속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곽용환 고령군수는 “최초의 왕릉 지산동 73호분을 통해 고대국가로 발전한 대가야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지산동고분군을 체계적으로 보전 정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므로,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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