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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지마라!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배동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4/24 [13:28]

신문을 보지마라!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배동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4/24 [13:28]

▲ 배동현 칼럼니스트     ©

또 아무른 변명 없이 시작한 어설픈 봄이 못 본 척 얼굴가리고 확 지나갔습니다. 희망과 기대 없이 시작했던 또 한해가 위기감과 혼돈 만 가중시키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반 토막 난, 아니 아예 휴지조각이 돼버린 주식증서 앞에서는 소액주주들의 한숨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습니다.

기업.금융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왜 나만 희생자가 돼야 하느냐’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 가운데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은 정부에 대해 ‘도대체 뭘 했느냐’며 연일 매서운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농어민 부채 탕감이나 실업자 보호 대책등 도 아예 선심성 정책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히 추상같은 비판입니다. 문득 천상병시인(1930-1993)의 비란 시가 생각납니다. /부슬부슬 비 내리다./ 지붕에도 /내 마음 한구석에도/ 멀고먼 고향의 소식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구나.../아득한 곳에서 무슨 편지라든가.../나는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그저 하느님 생각에 잠긴다./나의 향수(鄕愁)여 나의 향수여 /나는 직접 비에 젖어보고 싶다./ 향(鄕)이란 무엇인가./ 선조(先朝)의 선조의 본향이여/ 그곳은 어디란 말이냐?/ 그건 마음의 마음이 아닐는지/ 나는 진짜가 된다./ 비 한번 지날 때마다 확연이 바뀌는 세상. 꽃피고 새우는 철입니다. 이른바 요즘 “융합, 복합”이란 말이 유행입니다만 봄비야 말로 하늘과 땅의‘융, 복합’아닐까요. 사월비에호응하여땅속뭇씨앗들이트고죽은줄알았던나뭇가지끝에서놀라운빛깔들로살아나오시지요. 신비한 코러스!(조선일보.시인.장석남.한양여대교수)의 시평인 ‘시로 가꾸는 정원’ 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등 현 상황이 결정적 파국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물론 정치권력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과연 제 몫의 역할을 다했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언론은 감시자.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는가. 최근 한 신문은 현 정부 초기에 실시된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의 실패 본보기로 한국원자력을 꼽으면서 매서운 비판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빅딜을 밀어붙일 당시에도 이 정책의 무망(務望)함을 정면에서 지적한 신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거대 지방선거를 앞에 둔 정치세력이 경제난 극복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유혹이겠지요. 그러나 언론은 다릅니다.

냉철한 감시자.비판자의 역할을 다하려면 현제 위기 극복의 근원적 처방인 기업.금융 구조조정의 미진함을 강력하게 지적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런 언론은 없었습니다. 지난총선이 끝난 후에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한 신문은 없었습니다.

경제난이 표면화된 금년 들어서야 경제위기론이 신문 지면을 도배질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디로 뒷북을 치고 있는 셈이지요. 언론이 발언해야 할 때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정부 정책이 실책임이 드러나는 순간, 신나게 ‘정부 두들기기’에 나선 것입니다.

기이한 것은 정부에는 가혹하다 싶을 만큼 비판적인 신문들도 재벌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는 점입니다. 분식회계로 자그마치 20조원 이상의 국부(國富)를 낭비한 주범인 대우를 향해 처벌하라고 요구한 신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삼성의 변칙상속에 대해 시민단체와 법학 교수들은 물론 TV까지도 들끓고 있는 마당에서도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저 묵묵부답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언론의 기회주의를 웅변해 준 사례로 프랑스혁명 당시의 프랑스 신문을 꼽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섬을 탈출하자 ‘대역모 죄인’ 엘바섬 탈출‘을 제목으로 뽑았던 신문들은 얼마 후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할 즈음이 되자 ’황제‘ 환도하시다’ 표현했다고 합니다. 약 10년 전, 원로 언론인 김중배씨는 동아일보를 떠나면서 “이제 언론자유의 최대의 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이라고 갈파했다.

그의 일갈과 오늘의 상황을 겹쳐 놓고 보았을 때, 언론의 기회주의는 여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유한한 정권보다는 영원할 것 같은 재벌에 몸을 맡기기로 한 것일까요? 아니면 어차피 소수정권인 현 정부보다는 미구에 닥쳐올지도 모를 진보나 보수정권에 자신의 운명의 한가닥을 내기 건 것일까요.

언론은 소신을 헌 신짝처럼 버린 지가 오래입니다. 특히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경수 의원은 댓글조작사건을 악용하며 먹고살아온 드루킹을 멋스럽게 활용했습니다. 이를진데 김수영 시인의 일갈을 어찌 옳지 않다 하겠습니까? ‘신문을 보지 마라!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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