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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항 노점상 철거만이 능사인가?

이우근 취재국장 | 기사입력 2018/11/19 [16:26]

울진 후포항 노점상 철거만이 능사인가?

이우근 취재국장 | 입력 : 2018/11/19 [16:26]

▲ 이우근 본지 동해안 취재 국장    

포항 항만청이 울진 후포 어판장 노점상들에 대해 주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불법 이라며 강제철거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뜻도 없지 않은듯해 씁쓸하다. 임대료를 내고 있는 사업자들에게는 노점상은 눈엣가시나 다를 바 아니다.

 

비싼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는 노점상들은 비싼 임대료를 내는 가게들보다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고, 불공정함을 느낀 상인들의 불만을 더 이상 간과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는 대형 백화점과 대형 유통마트 입장에도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판매를 했던 대형 유통사들이 몸집이 커짐에 따라 저소득층에게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시장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노점상들이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은 소비자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길거리 상품의 질 역시 높아졌고, 오히려 대형마켓이 주도했던 시장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니 노점상인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음성적으로 돌고 있는 일명 자릿세와 세금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 그리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노점상보다는 대기업 유통사나 건물을 임대한 상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게 되었다.

 

하지만 노점상인들을 길거리에서 쫓아내서는 안 된다.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들 때 그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어찌 보면 노점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서민들의 가난함을 위로해온 하나의 문화였다.

 

노점상의 강제 철거는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장터와 노점문화의 형성 시기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각 지방의 특산물, , 어물, 공산품들을 타지방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조선시대의 특성상 먼 곳까지 가기 힘들었던 이들은 가까운 곳에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러 장터에 모이기 시작했고, 이 장터를 통해 먼 곳까지 지역 특산물이 오고 갈 수 있었다.

 

이 노점 문화가 조선 중기 이후 세금을 모두 쌀로 납부하는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하면서 보부상 및 독점 상인들이 생겨 특산물을 중앙국가가 지방관청을 통해 구입하게 되고 이러한 유통구조를 통해 유통구조가 발전하는 동시에 큰 부를 축척한 상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노점상인들 사이에 신분차가 생기게 되었고, 결국 노점상인의 대부분이 가난한 서민층들의 자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친일 성향의 이들이 부를 축척하게 되면서 극도의 빈민 계층이 도시로 유입되었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노점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미군부대 물품이 중요한 품목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전문적인 노점상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지금의 청계천 상가나 이태원,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이 그들의 전신이 되었다.

 

1990년대에도 이러한 상인 간의 신분 차이가 지속되었다. 급속한 산업 발달로 농어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생존을 위해 저 자금의 노점상을 선택했고, 직장을 얻기까지 임시방편으로 노점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단계가 되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었지만 이 시대는 최하위 계층의 노점상인 들을 탄압하는 시대였다.

 

올림픽과 국제 대회를 개최하면서 노점 상인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졌고 생존을 위해 노점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만 남겨져 지금까지도 생존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인 탄압의 영향으로 일반 시민들조차 서민층의 경제생활의 근간이 되고 있는 노점문화를 천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성향의 인물들, 해방 이후의 미군의 물품을 취급했던 상인들, 그리고 독점이 가능했던 보부상들은 현시대의 대형 유통사의 전신이다. 이와 반대로 노점 문화는 평민과 서민층을 생존 가능케 했던 서민 스스로가 만든 안전장치의 하나였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현 중산층은 노점상의 탄압에 무심하다. 대기업 위주의 산업사회에서 밀려 날 경우 생존할 수 있는 안정장치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리해고당하는 순간 당신의 삶을 유지시켜 줄 최소한의 경제활동 환경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노점은 최하층 계급의 생존을 위해 국가와 우리 모두가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영역이지 약탈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또한, 노점문화를 통해 전파된 부대찌개, 순대국밥, 떡볶이 등 한국의 식품문화도 발전해왔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는 울진 대게·붉은 대게의 명산지인 후포항과 SBS 백년손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엔 스카이워크와 연계한 등기산에 공원이 조성돼 울진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등기산공원엔 스카이워크와 출렁다리, 정글짐, 그네, 시소를 비롯해 정자, 휴게실, 체육시설 등이 꾸며져 있다. 능선과 능선 사이에 설치된 출렁다리는 공원을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공원 정상엔 1983년 문화재 발굴을 통해 드러난 신석기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관도 있다.

 

요즘 후포항에서 SBS 백년손님 촬영지를 보려고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 역시 근근히 버텨가는 노점상에게는 호재일수 있다. 포항항만청은 후포항에 수십 년 동안 노점상이 있었다는 것을 있지 말아야 한다. 후포항 노점상 철거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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