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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가 민주투사 이희호 여사가 떠났다

이우근 | 입력 : 2019/06/21 [16:24]

▲ 이우근 본지 논설위원

이 정부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국회 파행에 대한 책임이 적지 않다. 민생이 나아질 리 없고,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공직자비리수사처다 하면서도, 검-경의 편파수사와 표적수사 또는 공모수사나 부실수사를 근절할 대책은 언급한 적도 없다. 1987년 6월 10일부터 20일 동안 이어진 민주헌법 쟁취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민적 투쟁으로 마침내 이끌어낸 6/29 선언을 어떻게 잊겠는가.

 

이 선언은 여-야 합의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의 실현,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등을 주요 골자로 담고 있었으며,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가 발표했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을 지난다. 대혼미 속에 빠졌던 80년대가 최루가스 밖으로 고개를 내밀도록 첫발을 내디딘 날이다. 그리고 32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 한 세대가 물갈이 되었다. 32년 전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우리 사회에서 생물학적 도태를 맞이하고 있다 할 것이다. 6/10 민주항쟁 이후 지난 한 세대는 불망(不忘)의 세월이었다.

 

박종철을 고문해서 죽이고, 이한열을 최루탄으로 죽인 군사정권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을 비롯한 범국민적 민주체제 요구를 묵살하고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 군사독재를 잊어서는 안 되었다. 장기집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세력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세력에 대한 강경 탄압으로 일관하던, 압제(壓制)의 수단인 국가폭력을 은폐-축소-조작하던 군사정권을 꿈에도 잊을 수 없었다. 6/29 선언 이후 전국에서 연인원 5백여만 명이 거리집회-시위-농성 등에 참여한 20일간의 직선제 개헌 민주화 촉구와 최루탄추방운동 정국은 가까스로 수습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나 불망세대에게는 또다른 30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을 가로막는 군벌을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했고, 펀향된 보수의 색깔논쟁에 휘말려야 했으며, 구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에 맞서야 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당선시켜 실질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았는가 하면, 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역주행을 감내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민주주의의 시간 위에서도 불망세대는 잊지 않았다. 1980년 5/18의 진실을 규명했고, 분권과 균형발전-분배의 정의를 사회 담론으로 상정했으며,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촛불 주권을 상설화했다. 비폭력투쟁을 표방하는 광장민주주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과정에서 성숙했다.

 

세월호 정국과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절정에 달했다. 지난 30년 불망세대가 잉태하고 치른 산고는 문재인을 낳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회적 저항동력, 혹은 민주화의 동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에게만 드는 것일까. 문재인을 믿고 모든 것을 위임했기 때문일까. 민주화를 언급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반면,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사건을 비롯해 용산 화재 참사, 평택 쌍용차 파업 등, 경찰의 인권침해 사실을 진상조사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했으면서도 그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위가 요구한 검-경의 사과는 잘못을 인정한다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할 뿐이다.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구조적인 개선요구가 반드시 수반되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잉 대응, 혹은 과잉 진압은 독재의 잔재다. 문재인 정부가 그럴 가능성이 높은 체계를 내버려 둔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현재진행형인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이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문재인 정부가 인권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전 정권에서 비롯한 사안들로 실기(失期)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을 핑계로 중단이나 변경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인권을 바로세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성 체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인 탓이다. 유린당한 인권을 적정하게 위무하지 못하고, 인권을 유린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인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하물며 감히 체제에 변혁을 가할 역량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적폐청산에 과도하게 경도되었던 집권 전반기다. 야당을 적폐세력, 혹은 적폐잔존세력으로만 몰아붙일 뿐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 존중의 태도는 부족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촛불 주권은 왜 더이상 민주화의 담지자이기를 포기한 것일까. 아직 할일이 남았다. 어째서 민주주의라는 담론이 우리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일까. 

 

불망세대는 문재인을 낳고 스스로 용도를 폐기한 채 생물학적 도태의 길을 떠난 것일까. 6.10 민주항쟁 기념일 밤에 1세대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투사였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불현듯 불망세대들의 자취를 생각하게 된 계기다. 이 이사장의 말마따나 온유한 사람들을 열렬한 투사로 성장시킨 것은 불의한 시대였을까. 불의한 시대란 압제의 시대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인권이란 늘 강조하지 않으면 희미해지는 법이다. 기관이기주의는 자기 편의로 효율을 좇기 때문에 상대 존중과 비효율을 요구하는 인권에 거부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인권상황에 대한 상시감시체계가 없고, 인권유린 거름망이 취약한 시대야말로 불의한 시대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에 둘러싸인 그들은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막막하다. 불망세대가 우리 사회에 다시 복귀해야 하는 까닭이다. 불망이라는 지표를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한 뒤에 떠나도 늦지 않다. 인권유린이 음지에서 만연하게 되면 피해자의 신음소리가 양지에 닿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득 불망세대가 사라진 2019년 20대의 이념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이정표가 없는 길 위에서 그들이 선택할 길들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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