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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역사 인식

서지홍 고문 | 입력 : 2019/06/25 [13:24]

서지홍 고문    

역사에 대한 애착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개인역사 인식이 통치수단이 돼서는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변호사의 길을 걷다 정계에 입문했다. 원래 그가 원했던 전공은 역사였다. 중고교 시절 역사 과목이 가장 재미있었고 성적도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법대를 택한 것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를 택하기는 성적이 너무 아깝다는 어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지금도 역사책을 애독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초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돈 버는 일에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직접 기술한 적이 있다.

 

역사에 대한 애착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 구체적으로 표출된다. 그 밑바닥에는 역사의 갈등해소와 통합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취임 초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꺼내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통해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가야사는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까지 이르는 역사로 생각들 하는데 사실은 더 넓다. 섬진강 주변,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 일대 그리고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이 남아 있는 넓은 역사가 가야사다.

 

영·호남을 두루 걸쳐 있는 고대사 조망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의지였으리라 짐작된다. “왜 가야사냐. 지역의 경쟁적 개발만 부추길 것이다”는 논란을 그렇게 잠재우며 문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얼마 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보수진영에서는 “국군창설 뿌리가 됐다”는 대목에 격분했다.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몰아세웠지만,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신념은 충분히 존중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대통령 개인의 신념에 머물지 않고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간다면 역사로 통합을 이끌어내려는 대통령의 ‘선한 의지’는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권력의 힘과 결부되면서 정반대로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잖아도 나라 곳곳에 갈등 요인이 산재해 있는데 굳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했어야 했는가. 역사의 해석을 갈등의 불쏘시개로 들추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대내외 위기에 직면해 선택과 집중이 너무나도 절실한 지금, 불필요하게 갈등 전선만 확대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불과 며칠 뒤 청와대가 부랴부랴 나서서 서훈 논란을 잠재울 요량이 있었다면 이런 아쉬움이 더더욱 남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역사 인식을 통치에 주입하면 사단이 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 국민들은 권력에 의한 역사 해석 독점에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역사 해석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이 역사해석을 독점해 역사를 통치도구로 활용하려는 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설령 올바른 해석을 담고 있다 한들 득보다는 실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가 권력의 제물이 돼서는 안 된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도 안된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오죽했으면 박 전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 시절에는 “어떠한 경우에든 역사에 관한 건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겠는가.

 

영국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윈스턴 처칠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제일 중요한 건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역사 속 인물들의 장단점을 분석해 지도자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 역사를 통치의 도구로 삼으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희망했듯, 역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역사학자로 머물렀으면 한다. 역사는 통치자가 아닌 역사학자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최근 들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좌·우간의 분열을 조금이나마 멈추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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