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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고 있다

"이제 차츰 국민들의 눈에 알곡과 쭉정이가 확인되고 있음을 짐작한다"

서지홍 고문 | 입력 : 2019/08/21 [22:21]

서지홍 본지 대구경북고문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고 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국민들은 모른다. 다만 국가 지도자와 그 측근들만 아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한 번도 경험한지 못한 나라’를 구상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 한 예가 과거정부가 이루어 놓은, 특히 보수정부가 만들어 놓은 정책과 업적을 무조건 폐기하는 결단을 보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자 적폐청산이란 구호로 이명박, 박근혜가 이루어 놓는 정책이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심지어 4대강 보까지 허물겠다는 것과 우리나라 국부에 일익을 했던 원자력발전이 폐쇄를 당했고, 소득주도성장으로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을 무너뜨렸다.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버티기가 어려워 문을 닫거나 폐업을 하였어도 절대 바꾸거나 바꿀 생각이 없다. 

 

정부는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알면서 현 정부가 내세운 정책을 하나도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일이 없이 굳세게 밀고 나갔다. '주 52시간', '저녁이 있는 삶' 등 낭만적인 기업풍토를 만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못살겠다고 아우성쳐도 무엇 하나 바꾸거나 시정한 일이 없다. 그런 정부를 국민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좋은 나라인줄로 착각하며 따라만 갔다.

 

문재인 정부는 협치를 내세웠으나 끌어안는 정치보다는 내치는 정치로 일관했다. 전 정권 사람들을 ‘적폐’로 몰아 감옥으로 내쳤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기업인들을 ‘갑질’ 운운하며 구치소로 내쳤다. 강직한 검찰은 내치고, 바른 말 하는 공직자들을 내쳤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주류들은 ‘적폐’라는 이름아래 모두 내치는 정치를 하였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국내문제였다.

 

그런데 더욱 위험한 발상은 우방과 동맹을 내친 것이었다. ‘한미동맹’은 겨우 이름만 남았으며,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에 동맹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북한이 우리 영토 공격용이라고 위협하며 발사하는 미사일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뭐 별다른 일이 아니라고 하며 이를 빌미로 방위비를 더 내놓으라고 위협을 한다. 미국이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한창 일본과 경제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 정부는 외환불안과 주가폭락을 일으킨 일본의 경제보복을 작은 위기로 생각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기위한 시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일본에 그렇게 비타협적인 강성발언을 하는 정부는 사후대책은 ‘꿀 먹은 벙어리’다. 내치기에 이렇게 몰두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인내심이 대단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온화한 표정이 다가 아니다. 비타협적인 고집이 문제다. 도(道)를 쫓는 사람은 어떤 타협을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골방에서 벽을 맞대고 정진(精進)하는 것이다. 정치행위는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북한이 일곱 번의 미사일 또는 새로운 발사체를 쏘아대도 문 대통령은 19일째 입을 닫고 말이 없다.

 

현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불가지론(agnosticism, 不可知論)에 근거한다. 어떤 개인의 정의도 정치적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다수결에 기반을 둔 ‘잠정적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고안해냈다. 이 시스템을 구현하는 과정이나 유지하는 과정 모두 피와 땀, 눈물로 점철됐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도달한 잠정적 결론이다. 그래서 우리도 짧은 연륜이기는 하나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것이다.

 

현 정부는 그 교훈을 사그리 무력화 시키고 있다. 특정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정의를 정치에 구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란한 속임수들이 등장한다. 그럴듯한 말과 눈길을 끄는 쇼로 점철된 속임수 정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헛된 말과 공허한 쇼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 모든 정통은 사이비와 경쟁을 통해 살아남았다. 사이비가 승리를 하면 그 사회는 필히 망한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면 잘 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할 수 있다. 이제 차츰 국민들의 눈에 알곡과 쭉정이가 확인되고 있음을 짐작한다. 지금 국민들은 눈을 크게 뜨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이런 허황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수많은 현란한 감언이설에 속았으면 이젠 깨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나라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끌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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