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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대구경북

‘징비록’ 최초 책판 대량 발굴

한국국학진흥원"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

이성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6/03 [15:00]

‘징비록’ 최초 책판 대량 발굴

한국국학진흥원"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

이성현 기자 | 입력 : 2024/06/03 [15:00]

【브레이크뉴스 경북】이성현 기자=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저술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을 발굴했다.

 

▲ 징비록 책판 인수 현장  © 한국국학진흥원


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고 귀향한 후 전쟁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류성룡의 친필 ‘징비록’(국보)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기탁 받아 관리하고 있다.

 

‘징비록’은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에 간행된 목판본(16권본), 그리고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이번에 발굴한 1647년 무렵 제작한 책판은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졌을 뿐이다. 이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 시기에 제작된 책판을 대량 발굴한 것이다. 이 책판은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趙壽益, 1596∼1674)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으로, 문경에서 보관되어 오던 것을 5월 초 청주정씨 정봉진家에서 기탁한 것이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지은 ‘운양잡록(雲陽雜錄)’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한 결과,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가 확연히 다름을 밝혀냈다.

 

17세기 중반 책판의 형태적 특징, 마구리 부분의 판각법 등으로 보아 이번에 발굴한 책판은 1647년 무렵에 새긴 책판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당대 판본과 비교해보면 책판의 마모와 계선(界線)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魚尾) 모양 등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해진다고 밝혔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임이 분명하다. 앞으로도 한국국학진흥원은 기록유산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 입니다.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unearths the first mass of bookplates from ‘Jingbirok’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Director Jeong Jong-seop) unearthed 209 pages of the first bookplate of ‘Jingbirok’ written by Seoae Ryu Seong-ryong (1542-1607).

 

According to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on the 3rd, ‘Jingbirok’ is a record of Ryu Seong-ryong’s experiences during the war after returning home after experienc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Currently, Ryu Seong-ryong’s handwritten ‘Jingbirok’ (national treasure) is being deposited and managed by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Jingbirok’ was published in several editions and distributed widely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transmitted to Japan through the Joseon Tongsinsa, and the Japanese version of ‘Joseon Jingbirok’ was published in 1695.

 

The currently available editions include a woodblock version (8 volumes) published in the early 17th century, a woodblock version (16 volumes) published around 1647, and a woodblock version (16 volumes) published by Okyeonjeongsa in 1894. Only some old books remain in the woodblock printed version, and the woodblock version published in 1894 retains both the old book and the bookplate.

 

 The recently excavated bookplate made around 1647 has only been handed down in a few pieces. This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but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unearthed a large number of bookplates produced during this period. This bookplate was produced by Ryu Seong-ryong's maternal grandson, Jo Su-ik (趙壽益, 1596-1674), who started the engraving work while he was serving as the governor of Gyeongsang Province. It had been kept in Mungyeong and was deposited by the Jeong Bong-jin family of the Cheongju Jeong clan in early May. Records related to publication are included in ‘Unyangjapnok (雲陽雜錄)’ written by Lee Ui-hyeon (李宜顯, 1669-1745).

 

 As a result of comparing the edition (16 volumes) published by Okyeonjeongsa in 1894 currently housed in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an official from the Korea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found that although the volumes of the two editions were the same, the shapes were clearly different.

 

Considering the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mid-17th century bookplate and the engraving method on the edge, the bookboard excavated this time can be considered to have been carved around 1647. In addition, when compared with the contemporary version, the basis for this becomes clearer as the wear of the bookplate, missing lines and strokes, and the shape of the endings on the core of the plate are consistent.

 

 Jeong Jong-seop, director of the Korea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Korean Studies, said, “It is clear that the 209 bookplates unearthed this time are important material for the study of the printing history and woodblock printing of Jingbirok.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Institute plans to continue to focus its efforts on spreading the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 he said.

브레이크뉴스 대구 본부장입니다. 기사제보: noonbk0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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