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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대구경북

내 마음에 여백 하나

서지홍 고문 | 기사입력 2014/08/17 [16:09]

내 마음에 여백 하나

서지홍 고문 | 입력 : 2014/08/17 [16:09]

서지홍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고문
커다란 종이위에 작은 점 하나 찍어놓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다만 까만 점이 보인다고 한다. 보이는 까만 점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보다 몇 십배 더 넓은 하얀 여백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여백이 주는 은혜보다 작은 점의 상처가 자신의 인식 속에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세월에 하나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기억을 살려 상처 받은 일을 생각하면 슬프고, 억울하고 우울하다. 잊을만하면 되살아나는 상처에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난다. 마음을 비워야지 하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상처는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의식과 무의식 속에 꿈틀거리며 상황에 따라 예상치 않은 거친 행동이나 차가운 마음으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

우리가 범죄의 현장이나 그 전력을 들추어보면 반드시 그 범인은 어린 시절에 한두 번 마음의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래 묵은 그 상처가 키워져서 결국은 범죄로 이어지고 사회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즉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그 상처를 털어버리지 못해서 일어난 또 하나의 상처가 된 것이다.

‘상처는 모래위에 적고, 은혜는 바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커다란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 한순간 또는 하루정도는 감사할 수도 있고 행복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순간에 받은 아주 작은 상처는 일생 동안 마음에 품고 서글프게 살기도 한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가, 무엇으로 억울해 하는가? 상처가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바위에 새기고 또 새겨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다면 결코 용서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용서할 수 없음은 곧 상처를 치유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고 그 상처로 인해 자신이 아파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존재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있는 세상은 지금 만들어져 간다. 상처는 타인에 의하여 이미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치유는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다시 마음속 세계로 들어가 새겨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자.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비운다는 일,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 온 과거를 지운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워야 한다. 특히 상처를 받은 일을 오래 간직하면 곪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한 번 양보하면, 내가 먼저 용서하면 다툴 일이 없을 텐데, 서로 먼저, 서로 앞질러 가려고하니 사고도 나고 시비도 하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일, 이것이 ‘은혜를 바위에 새기고, 상처를 모래 위에 새기는 일이다.’ 은혜를 먼저 생각하라. 은혜에 대한 감사를 먼저 하라. 그러면 상처는 자연적으로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상처를 먼저 생각하면 은혜는 점점 잊게 되는 것이다. 지나 온 세월 나에게 크고 넓은 고마움을 준 은인이 한두 분쯤은 있을 것이다. 그 분을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고마워하라. 그러면 상처 따위는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즈음하여 가톨릭의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을 하셨다. 가장 낮은 곳을 찾아, 가장 아픈 사람을 찾아 위로하고 기도하겠다는 교황의 뜻이 거룩하다.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라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다. 남에게 입은 상처를 상처로 생각하지 말고 시련으로 생각한다면 다 용서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늘 감사하다는 생각과 사랑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자. 매일 그렇게 살다보면 보다 밝고 맑은 날이 나를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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