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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매일 접속하지만 늘 그렇듯 무겁고 천편일률적인 시사성 기사들만 난무한 포털 뉴스 판 가운데 오늘 유난히 눈에 띄는 기사 제목 하나가 시선에 들어왔다. 전북 전주에 사는 77세, 올해 희수(喜壽)인 노구의 아들 최병한씨가 백수(百壽)가 된 몸이 불편한 일백세 노모 이야모씨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효(孝)는 어찌 보면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중에 으뜸으로 당연한 도리의 단상인데 해당 글을 쓴 기자는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고 메인를 뽑아낸 것이다. 직업병이랄까? 순간 인간의 당연한 기본 도리인 ‘효’가 어찌 그리 가슴뭉클한 일이기 까지 해야 할 까 하는 느낌이 언뜻 스쳤다. ‘글로벌 시대’란 세계적 조류와 언론, 방송 등의 여과되지 않은 여론 생산, 물질만능 및 핵가족 세태 등에 편승해 대한민국 사회도 ‘효’ ‘정(情)’이란 우리 고유 색채가 다소 희석된 것은 현실적으로 부인할 수 없으나 이도 전부는 아니다. 다원화, 다양성의 시대적 조류속에 우리 사회도 이런 저런 사람들이 뒤섞여 있듯이 '효'와 '정'의 단상도 최씨처럼 사람 나름 아닌 가 생각된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이 같은 측면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네티즌들의 칭찬과 자성(自省)이 대부분을 이룬 가운데 한 네티즌은 “부인이 힘들겠다..”는 다소 생뚱맞은 뉘앙스를 풍기는 의견을 피력했고, 여기에 여타 네티즌들의 갖은 질타가 이어졌다. 이 네티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이 긍정을 표한 해당 기사에 이런 댓글을 단다는 의식 자체가 사실 의외로 느껴졌다. ‘가족’의 단상에서 자신이 가진 피해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기사엔 어울리지 않는 의견이었고, 네티즌들의 거슬림을 탄 것 같았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사실 시부모-효자아들-며느리, 이 단상을 두고 한국사회에서 입장에 따라선 중용적이고 객관적 혜안이 쉬이 도출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존의 경우를 봤을 때 이런 단상이 인터넷 포털 토론의 장에 포스팅되면 필히 남-여, 아들-며느리 등으로 삼삼오오 편이 갈린 채 치열한 '갑론을박'의 논쟁 무대가 연출될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게 대한민국의 현 주소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갖은 ‘사랑’이 쉬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 중 진정한 ‘사랑’은 과연 얼마나 될 까. ‘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은 이기의 발로이지 사랑이 아니지 않는가. 이상적 얘기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나’를 얼마나 비울 수 있는지, 상대를 위해 진정 ‘나’를 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가장 완벽한 사랑이라 칭해지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자식들 중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절반' 아니 '반에 반'만이라도 '효'를 다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였고, 늘상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실 77세란 적지 않은 나이에 노모가 입원한 노인요양병원에 아예 살림을 차리고 24시간 병간호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최씨는 고령의 나이탓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사실 잘 모른다. 그래서 최씨가 정말 진정한 '효자'란 생각이 여지없이 들었다.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일을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며 병간호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의 ‘맘’이나 ‘의지’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필자도 겪어봐서 잘 안다. 그래서 장기 입원환자 경우 대부분 간병인을 쓴다. 낮에는 가족들이 번갈아 교대로 돌보기도 하나 야간의 경우 거의 간병인들이 환자를 돌보는 게 통상이다. 특히 놀란 것은 어느 날 새벽 노모가 갑자기 기력을 잃자 영화, 소설 속에서나 접한 전설속의 ‘단지(斷指)’를 최씨는 했고, 노모는 다행히 기력을 차렸다 하니 진정 하늘에 닿을만한 '효'라 여겨진다. 다행히 최씨의 아내와 장년의 두 아들 부부들이 최씨를 도와 교대로 노모를 돌보며 그때 비로소 최씨가 짧은 휴식을 취한다 하니 다행스레 여겨졌다. 칠순의 남편과 아버지가 지극한 '효'를 다한다 하나 아내와 자식들 입장에선 얼마나 염려되고 걱정이 될 까. 하지만 이보다 더한 '가족 사랑' '효'의 교육장이 어디 있을 까. 부모의 공덕은 자식에게로 간다 한다. 최씨의 가족들은 자손 대대로 두루 '복(福)을 받을 게 자명한 일일 것이며 아마도 그게 우리가 믿는 순리일 것이다. 사랑도 지극히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어찌 보면 주고받는 상대성의 등식에서 해답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받아 본 이 만이 할 수 있다 했는가. 최씨 모자는 아마도 이번 생(生)의 인연 길에서 전부의 ‘의미’를 이미 가졌고, 아무 여한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다.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우리 새끼’라 불러 주는 백순 노모가 아직 세상 자신의 곁에 있고, 자신을 ‘법’이라 생각하며 든든히 지켜주는 아들을 가진 노모, 이 모자의 모습은 그래서 세상 뭣보다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으며 필자도 부럽다. 아직 부모가 세상 곁에 있는 대한민국의 행복한 자식들이여 돌아가신 뒤 후회하지 말고 살아 계실제 여한없는 '효'를 다하라. 필자도 겪어본 바 그래야 훗날 그나마 여한을 다소 덜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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