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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코앞에 둔 어수선한 분위기인 가운데 서민가계의 주름살이 깊어만 가면서 대한민국 가장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소득은 없는데 부채는 늘어나고 실질금리도 제로인데다 예금도 하나마나인 양태인 가운데 가계부채 상환능력도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회복세라 하지만 지표-체감경기는 크게 다른 가운데 가계 빚이 갈수록 늘면서 교육비 지출마저 외환위기이후 첫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새해를 맞기가 두려운 가계들이 갈수록 늘면서 덩달아 가장들의 마음도 천근만근이다. 휴일 저녁 무심코 틀은 TV에서 ‘우리 아버지’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시대 다양한 연령, 계층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투영돼 눈길을 끌었다. 그 중 군 입대를 앞둔 아들(결혼 후 10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라 한다)을 생각하며 선배와 술 한 잔 걸치는 중년의 한 아버지. 전화연결을 통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이가 누구냐는 MC의 질문에 그 아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거론했다. 아들에게 존경받는 행복한 그 아버지의 미소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표정이다. 반면 또 한 아들은 ‘세종대왕’이라 말해 그 아버지를 머쓱케 했고, 순간 스치는 그의 스산한 표정이 애잔케 느껴졌다. 또 요즘 드물게 자식이 4명인데 그 중 청각장애아를 가진 한 아버지가 그 자식을 향한 가슴속 애환을 얘기하며 눈물을 보여 가슴을 뭉클케 했다. 이날 30년간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며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낸 조환철(58)씨가 ‘오늘의 우리 아버지’로 선정돼 ‘아버지 냉장고’를 받았다. “받을 자격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조 씨의 겸손함에서 세월을 거슬러 우뚝 서 있는 한 ‘거목’이 엿보였다. 또 조 씨의 모습에서 세상 어떤 잘난 아버지보다 위대함이 엿 보이는 건 왜일까.
화려한 사회적 타이틀과 권력, 명예, 부(富)... 난세인 이 시대 대부분 아버지들의 아킬레스건이다. 물론 일부 아버지들 경우 여기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물질만능이 어느새 지배적 시대조류로 자리한 현 한국의 업보이자 그 속 미로에 갇혀 버린 힘없고 무기력한 우리 아버지들의 딜레마이다. 또 미래 한국을 짊어 질 청소년들과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 실업의 고통과 함께 돈을 많이 못 버는 자괴감으로 방황하는 수많은 가장들이 같은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 와중에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을 향해 '일류대와 일류직업'을 위한 공부에 채근 질이고, 자신들 조차도 동일 딜레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쩌면 부모-자식의 '연(緣)'도 거울의 한 단면이다. 세상 모든 상대에게서 '나'를 비춰보듯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서로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건 거부한 채 부모-자식 인연의 미명하에 일방만 만연하는 듯하다. 당연히 불협화음과 갈등, 불신은 필연 화 되고 있다. 일류지향 병, SKY 학벌 타이틀, 그럴싸한 직업, 물질 등이 인생의 최고 지양 점이자 행복인양 그 정체모를 ‘광풍’이 언젠가 부터 온 나라를 휘 젖고 있는 가운데 모두들 정신없이 휩쓸려가면서 서로를 비춰 볼 여유를 잃고가는 것 같다. 무언가 소중한 '알맹이'가 빠진 채 모두들 그 ‘광풍’에 휩싸여 낙오하면 큰일 날듯이 자식들을, 또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채근하고 있는 형국이다. 행복의 관점 및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요소지만 이 ‘광풍’엔 주관이 배제된 채 객관적 하나의 ‘축’으로 사람들 의식을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타이틀과 부, 명예 등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편견 및 선입관으로 재차 서로를 구분 짓고 있는 게 이 시대 우리 한국의 단상이다. 세상 것 다 돌고 돌며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부질없음과 어리석음이다. 지리하게 길어지고 있는 경제난 탓에 세상 최대의 안식처이자 서로에게 의지, 한편이 되어야 할 한국의 수많은 가정, 가족들이 방황하며 신음하고 있다. 오래 전 어느 날 언론계 한 선배가 어머니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3일장과 하관까지 같이한 적이 있었다. 서울 정치권을 출입했던 그 선배는 대구만 내려오면 함께 음식 싸들고 어머니 묘소를 찾았고, 내가 먼 산을 보고 있으면 혼자 처절하게 목 놓아 울 곤했다. 그때 그 선배는 “부모란 건 같은 하늘에 살아 계신 자체가 큰 힘이다”고 말했다. 당시 부모님이 건재했던 입장에서 그 의미를, 한(恨)을 깊이 각인하지 못했다. 늘 뒤늦게 깨닫는 인간의 우매함에서 벗어나진 못했던 것이다. 보고 싶어도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그 자괴감이 얼마나 처절한지 아직 겪지 않은 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세상에 부모 모두가, 또는 한 쪽이라도 세상 곁에 있는 복 많은 자식들이여, 그 어느때 보다 어려운 경제 혹한기속에서 부모들은 오늘도 가정과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말없는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다. 세상에 지치고, 냉엄한 현실에 치이는 부모들을 견인하는 힘의 원동력은 자식에게서 나온다. 그게 부모다. 부모 생전에 “사랑 합니다” “존경 합니다”란 말을 아끼지 말고 여한 없이 하고 또 하길 바란다. 또 현재 세상을 휘 젖고 있는 정체모를 '광풍'에 휩싸여 부모를 '좋다' '나쁘다'로 양분하고, 구분 짓는 철없는 업보를 짓지 말길 바란다. 그게 이번 生에 주어진 귀 하디 귀한 ‘연(緣)’에 대한 최소 예의이자 기본이다. 우리가 발 디뎌 가고 있는 이 세상 여행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고, 시공의 영원 개념에서 보면 잠시 스쳐가는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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