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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대구경북

최윤희 부부와 한 장애우 아버지의 자살

부모 살아있음 그 자체가 어떤 자식에겐 고해의 삶 버틸 힘과 원동력

김기홍 부장 | 기사입력 2010/10/08 [12:59]

최윤희 부부와 한 장애우 아버지의 자살

부모 살아있음 그 자체가 어떤 자식에겐 고해의 삶 버틸 힘과 원동력
김기홍 부장 | 입력 : 2010/10/08 [12:59]
뉴스를 통해 종종 세상의 희비를 엿본다. 흐뭇한 아름답고 따스한 소식은 치솟는 세상괴리를 극복케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반면 섬뜩한 소재나 특히 ‘자살’ 소식을 접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세상과 자신의 올무가 오죽 힘들고 버거웠으면 스스로 귀한 목숨을 끊을까 해서다. 스스로 세상을 저버린 그들에겐 ‘삶’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까. 답은 먼저 떠난 그들만이 알 일이다.
 
두 가지 뉴스가 지금 이 순간과 오늘 보낼 하루를 또 달리 와 닿게 한다. 하나는 방송 등을 통해 ‘행복전도사’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방송인 최윤희(63)씨가 7일 오후 남편인 김 모(72)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다. 최 씨는 모텔 방에서, 남편은 화장실에서 각각 목맨 채 발견됐고 편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한다. 유서엔 최 씨가 심장과 폐질환 등 지병을 비관한 내용과 가족·지인에게 미안하단 내용 등이 담겨있다고 했다.
 
경찰은 남편이 먼저 최 씨의 자살을 돕고 뒤 따라 목을 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씨는 수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방송활동을 중단한 가운데 지난해엔 한 언론을 통해 자살시도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최 씨는 그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주부로서 경험담을 웃음으로 풀어내 행복전도사로 알려져 왔고, 희망과 행복을 주제로 20여권의 저서도 남겼다.
 
또 하나는 12살 어린 장애우 아들에게 기초생활보장 및 장애아동 부양 혜택이라도 주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건설일용직에 종사한 그는 일감이 끊겨 힘들어하다 유서 한 장 남기고 아들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이 사회의 복지현주소를 투영한 채 생각케 하는 사례다. 이 케이스와는 일견 다르지만 힘든 현실을 비관하며 자식의 남은 삶을 우려한 부모들의 동반자살 소식을 뉴스에서 가끔 접한다. 물론 부모로서의 주관적 판단이겠지만 자식 인생을 진정 생각했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란 회의가 든다.
 
당초 생명을 줬다하나 자식인생에 대한 결정·대리권과 폐할 권한이 과연 부모에게 있는 가란 본질적 물음에도 직면한다. 무한 약육강식의 냉정한 이 세상은 물론 어떤 이에겐 버티고 상대하기 버거운 단상일지 모른다. 또 오죽하면 그랬을 까란 안쓰러움 역시 크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 소유물이 아닌 이상 생명을 줬다 하나 폐할 권리까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진 않는 게 솔직한 개인 심경이다.
 
반면 사실 이런 논함 자체가 무의미하단 생각도 든다. 인생을 대신 살아주거나 힘이 돼주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함부로 논한다는 게 호사가의 잔인한 관심일 수 있는 탓이다. 또 원래 남의 삶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 역시 아니란 생각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자살은 자신의 삶의 존폐에 대한 온전한 스스로의 선택이다. 가톨릭 등 종교적 측면에선 비판과 논란이 일수 있으나 죽은 이의 선택과 배경을 두고 산자들이 논할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죽음을 세상시각이나 개인주관으로 분류한다면 망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또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제3자와 타인들이 가타부타 함부로 논할 문제 역시 아니다. 다만 단 하나 당위성을 둔다면 혹여 어떤 자식에겐 부모의 자살과 죽음이 과연 최선이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 씨 부부와 근로자 아버지의 남겨진 자식들은 각자 부모의 죽음을 과연 어찌 받아들일까. 부모들의 바람 그대로 자식들은 수용할까. 그 역시 자식들만이 알 일이다. 그래서 굳이 판단하거나 논할 생각이 없다. 부모들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다만 필자역시 그랬지만 또 어떤 이에겐 현실적 상황이야 어떻든 부모가 살아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어떤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의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현실적 괴리를 극복하고 버틸 힘과 동력원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실은 실제 부모를 여의치 않고는 모를 일이다. 예전에 부모 모두 생존 시 먼저 여윈 이들에게서 그 의미를 들었을 때 당시엔 깊게 체감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돌아가시고서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이 세상의 자식들은 늘 그렇게 우매한 존재들인가 보다.
 
땅은 어머니요, 하늘은 아버지란 생각이다. 부모는 그런 존재였다. 필자역시 사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땅을 먼저 잃고 그 후 하늘마저 폐함을 겪었기에 오도 가도 못할 공중에 마냥 떠있는 형국이 오랜 시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삶의 공허함이 크다는 반증이다. 인생관 역시 그 두 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 그래서 먼저 떠난, 것도 자연사도 아닌 ‘자살’의 극단적 방법을 통한 최 씨 부부와 근로자 아버지의 남은 자식들 향후 행보와 심경이 어쩌리라는 건 대충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충격과 비통함이 오죽할까. 당장은 힘들고 벅차겠지만 그래도 잘 버텨가길 바랄 뿐이다. 물론 삶은 어찌 보면 ‘고해(苦海)’일수 있다. 하지만 남은 삶 여정 길을 잘살아내야 한다. 그게 그렇게 까지 세상을 등져야 했던 부모들의 참담한 맘을 헤아리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필자역시 그런 맘으로 현재를 버티고 있고, 남은 여정 길 역시 그럴 생각이다. 또 경험상 시간은 기억의 습작을 통해 때론 죽을 것 같은 순간도 가끔은 희석시켜 준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최 씨 부부와 장애우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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