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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도 모르는 나, 편견·오해의 세계’라는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왜곡되어 비치는 이미지에 대해 심리학자의 해법까지 있어 마치 나를 위한 글 같아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기사에는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실제와 다른 이미지 때문에 마음고생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진작에 이런 기사가 나왔어야지….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이라도 이런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고개를 드는 온갖 이야기들이 내 뒤를 따른다. 신문 기사에서는 오해가 10년 만에 풀리는 경우도 있다지만 나의 경우는 벌써 구미에 정착한지 23년이 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 물론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또 그런 소리냐?’ 하고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는 척하지만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문득 그런 이야기들이 내 머리를 스치면 괜스레 열이 오른다. '내가 모르는 나'와 '남이 아는 나'로 인해 큰 오해가 생기고, 그렇다고 일일이 만나서 그 오해를 풀 수도 없으니 참으로 황당하고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1988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처음 구미로 왔을 때 대학에서 4학년 교양영어를 맡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나이 서른이 넘어 우리나라로 돌아온 나에게 특히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으면서 당시 거의 남학생 일색인 공대에서의 수업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몸집도 나보다 더 크고 건장한 청년들이 졸업을 할 때면 커피세트와 꿀 등을 들고 찾아와서 넙죽 큰 절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식의 ‘스승과 제자간의 정’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함께 자장면도 시켜먹었고 우연히 시내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빵이나 음료수를 사주기도 하는 다정한 누나 같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공단 내 여러 기업체로 강의를 나가면서 나의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전원은 남성이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었고 그들이 나와 편하게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내가 교육에서 정계로 발을 옮기자 이런 것들이 변질되어 남자친구가 많다, 누구누구 애인이다, 등 ‘이색밝힘증’이 많은 여자로 알려지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전해 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하며 웃어넘겨 버린다. 거기에다가 외국생활을 오래 한 것이 마치 나의 모든 것이 외제 또는 명품인 것처럼 비취지는 것이다. 백화점 할인코너에서 구입한 가짜 진주목걸이를 내가 하고 있으면 수 백만원짜리 진주 목걸이가 되어 다른 여성들이 목에 걸어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산 옷도 내가 입으면 모두들 만져보며 ‘역시 외제는 달라!’하는 웃지도 못할 일도 있었다. 기사에서는 가끔 싸구려 옷도 입고 다니며,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이거 짝퉁'이라 말하라고 전문가는 말하지만 싸구려 물건을 가지고 싸구려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해법은 없다. 나의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비추어지고 찔러도 피도 나지 않을 사람으로 보여 진다고 한다. 내가 만약 자신 없게 보였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과연 나에게 영어회화를 배우려고 했겠는가? 우리 동네장날에 이웃과 함께 시장에서 떡뽁이나 오뎅을 사먹는 것을 나는 즐긴다. 그러나 모두들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깔깔 웃는다. 왜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나? 외국에 있을 때에도 내가 가장 그리워 했던 음식이 바로 떡뽁이였는데. 이런 편견과 선입견으로 포장된 나의 이미지는 나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그룹의 여성들과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여성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리 정겹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성은 나와 단 한번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으면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포장된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최윤희’에 대해 듣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서글픈 현실이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나도 모르는 나’를 억지로 떼어내기 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내가 가장 편하겠지. 매일 팔이 아프도록 힘들게 드라이하던 머리도 요즘에는 샴푸만 하고 훌훌 털고 나가본다. 얼마 전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입고 있던 홈드레스를 입고 아파트 앞 가게로 나갔다가 동네 어르신을 만났다. 나를 보자말자 덥석 손을 잡으며 어깨를 두들겨 주시는 어르신께 송구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이젠 쌩얼로 나가는 자신감도 얻었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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