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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대구경북

얼마나 내려놓고,비우며 나누었는가!

'나눔-사랑'은 살아 천국을 엿볼 기회를 가져다 준다

브레이크뉴스 | 기사입력 2009/12/13 [19:46]

얼마나 내려놓고,비우며 나누었는가!

'나눔-사랑'은 살아 천국을 엿볼 기회를 가져다 준다
브레이크뉴스 | 입력 : 2009/12/13 [19:46]
 
당신은 올 한해 얼마나 내려놓고, 비우며 나누었는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또 한 해가 시공의 뒤안길로 저물 준비를 하고 있다.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 하나가 있다. ‘나눔’의 미학과 ‘사랑’의 단상이다. 이맘때면 각 매스컴들도 정례행사처럼 불우이웃 돕기 등의 타이틀을 내건 채 ‘나눔’과 ‘사랑’을 부각시킨다.
 
사람들도 매년 연말연시면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담을 것과 버릴 것을 추스른다. 어떤 이들은 각종 매스컴 또는 온라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과 그 사례를 접하면서 나름의 간접적 자성을 갖는다. 또 어떤 이들은 움켜쥐려고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나눔을 실천할 것을 결의한다. 일회성이든 장기적이든 직접 행하는 ‘나눔’만큼 세상의 냉엄함과 현실논리를 희석시키면서 살만한 세상으로의 인식 변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없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가?

일례로 지난 06년 통계청 사회통계 조사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 후 국민소득은 지속적 성장세를 이어온 반면 국민행복지수는 1996년(66.6%) 이후 10년간 18.1%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경제연구소’가 세계 26개국을 대상으로 산출한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국민소득 6천 달러 안팎인 페루와 같은 19위(1.96점)에 머물렀다. 이는 개인이 갖는 돈은 급속히 증가한 반면 행복느낌은 그에 따르지 못함을 반영하고 있다. 단순 통계를 떠나 행복은 결국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닌 욕심을 줄이고 나누는 삶에 있는 것 같다.
 
‘나눔’은 소위 세상의 가진 이들이 그 중 일부를 떼어 내놓는 것과 없는 이들이 그나마 가진 전부를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 전자가 대부분 나눔의 틀을 반영한다면 후자는 아마도 ‘신(神)의 사랑’을 대변하는 게 아닐 까 싶다. 하지만 나눔의 경중을 논함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작든 크든 나눔 그 자체가 이미 세상-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발 디딤이기 때문이다. 각 종교들도 궁극적 진(眞)에선 일맥상통하듯이 ‘나눔-사랑’의 단상처럼 따스하고 찬연한 세상의 ‘빛’이 어디 있을 까. 
 
▲ 민들레국수집 지킴이 서영남씨와 멤버들     ©김기홍 기자
많고 다양한 나눔의 장이 존재하는 가운데 일상에서 ‘소명’처럼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도 많아 세상의 ‘선(善)’을 견인하고 있다. 그 중 어제 TV방송에서 우연히 접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266-61 T:032-764-8444)’ 얘기. 알고보니 이미 각 매체에도 많이 다뤄졌고, 알려진 집이다.
 
그 방송에서 주인장, 아니 지킴이 서영남(55.사진위)씨가 뱉은 짧은 한 마디가 가슴을 내려쳤다. 그는 “내 전부를 내 놓아야 그때 사람들도 자신들의 것을 내놓을 맘을 갖는다”고 말했다. 불현듯 부끄럼이 뇌리를 친다. 돌이켜 보면 개인적 ‘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폐해를 준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진정 모두 내려놓았는가? 즉답을 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말은 쉬이 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말 자체는 이미 의미를 잃고, 신뢰도 견인하지 못한다. 하물며 많든 적든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놓은 채 ‘무소유’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는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서 씨는 이미 스치듯 짧은 이 세상 여행길의 진정한 ‘궤’를 찾은 것 같아 부럽다. 지극히 낮은 곳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을 더욱 낮추는 이들을 보면 그 겸손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어떤 종교적 논리도, 그럴싸한 수식어도 서 씨의 ‘겸손’ ‘사랑실천’에 버금갈 수 없음이다. 기나 긴 업보의 테두리에 쌓인 한국에 아직 희망을 엿봄은 그나마 서 씨 같은 작고 낮지만 ‘큰 거목’들로 인해서다. 삶의 ‘궤’를 찾은 것에 그치지 않고 묵묵히 실천 행을 하는 그에게 진정한 존경을 표한다.
 
서구화 물결 및 경제성장 등 논리에 언제부턴가 ‘중심축’을 잃은 채 표류중인 이 시대 한국사회. 사랑-존중-배려 등 더불어 살아가는 테마는 희석된 채 오직 ‘일류직업·S大 타이틀·돈’ 등이 전부인양 미래 후세들의 공부를 무섭게 채근하고 있다. 학교-공교육도 이미 인성교육의 장이 아닌 입시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어릴 적부터 주입식 외우기 공부를 잘한 후 훗날 그럴싸한 대학 타이틀과 직업만 가지면 그 사람이야 어떻든 일단 플러스 가산점을 주는 선입관과 편견이 활개를 치고 있다.
 
더불어 기성세대 자신들조차도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방황하고 있다. ‘나’와 ‘가족’ ‘우리’란 이기적 미명하에 남보다 더 가지려, 더 채우려, 더 높은 위치와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해야 행복한 것처럼 그 정체불명의 행복 교과서가 미친듯 질풍노도처럼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을 몰아치고 있는 형국이다. 소중한 인연의 장도 ‘조건’에 조롱당하며 저울질당하고 있는 가운데 ‘행복지수’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당연한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다. 하지만 다원화 사회의 현 추세 및 조류속에서 이는 일부라 아직 믿고 싶고, 스스로도 위안하고 있다.
 
지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이혼 사유 중 경제문제 비율이 10% 늘은 데다 가족만족도도 10% 이상 줄었다. 이는 경제 수준만큼 삶도 나아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개인의 행복감은 증가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또 신체수명은 79세인데 반해 ‘행복수명’은 겨우 38세에 불과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불행하다 느끼면서 산다는 통계도 있다.
 
영원한 게 아무 것도 없는, 훗날 종착역에 내릴 땐 모두 내려놓고 홀연히 빈 몸으로 가야하는 어쩌면 허망한 우리네 인생여정 길. 예전 필자도 머릿속에선 인지했으나 부모님과의 영원한 별리를 통해 비로소 이를 가슴에 내려 앉혔다. 세상 모든 것들 돌고 돌며, 살면서 잠시 빌려 쓰다 나중엔 모두 돌려줘야 할 것들이다. 진정 내 것은 삶 어디에도 없으며 인연 따라 잠시 왔다 인연 다하면 갈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생 거기에 ‘집착’하고 목메면서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다 훗날 후회하는 우매함을 늘 반복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서 씨의 말을 역설화하면 ‘모두 내려놓고 비우면 모두를 얻을 수 있음’의 메시지다. 자신을 내려놓고, 비움은 사랑의 출발점이며 나눔의 ‘행(行)’으로 비로소 사랑은 구체화되고 완성된다. 서 씨는 이를 깨달은데 그치지 않고 직접 행하면서 '神'의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에 정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진(眞)’인 것 같다.
 
‘사랑’은 먼저 ‘나’를 놓은 채 상대를 배려하며 ‘나’를 기꺼이 건네주는 일로 살아 천국을 엿볼 수 있는 단상이다. ‘나눔’의 실천은 그 단상에 다가갈 수 있는 첫발걸음이다. 살면서 이같은 공덕쌓음이 어디 있을까. 또 나눔은 결국 자신의 행복과 영혼의 충만함으로 되돌려준다. '나눔'과 '용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기'라 했던 가. 답은 명료한데 결국 행하느냐, 아니냐의 선택권과 각자의 몫만 던져져 있다.
 
올 한해 시간의 끝자락에 서서 세상의 많은 이들이 살아생전 ‘천국’을 엿볼 기회를 가져봤으면 하는 바람 하나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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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름빛 2009/12/14 [02:09] 수정 | 삭제
  • 사진이 참 정감이 가네요.때론 한국 참 냉혹하죠.지하철서 장애인이 무얼 팔아도 눈길은 커녕 ..눈 감아 버리지요. 말로만 하는 봉사, 기부 이것도요. 하려는 마음 가진 사람도 의심하고 말로만 하는 그런 봉사도 ....이런 기사 쓰신 분은 참 마음이 따뜻하겠다는 느낌이 드네요.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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