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징크스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방어위한 의도
허은희 기자 | 입력 : 2005/12/06 [13:29]
불길한 징후,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인가? 우연의 연속인가?살다보면 불운의 쳇바퀴에 갇힐 때가 있다. 무슨 일을 하면 꼭 나쁜 일이 이어진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틀리고 마침내 경을 치기도 한다. 이런 불행의 연속에서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기란 애초부터 난감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괜한 의심이 생긴다. ‘혹시 그때 그 일이 불운의 조짐이 아니었을까?’ 이런 의문들이 모이고 모이면 징크스(jinx)를 갖게 된다. 징크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 사용하던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wryneck/Jynx torquilla)라는 새의 이름(jugx )에서 유래한다. 사람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마치 마술과 같은 힘으로 일어나는 불길한 일이나 운명적인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으레 그렇게 되리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일’까지를 포괄한다. 얼핏 보면 심리학이나 인류학에서 말하는 ‘금기’(taboo)와도 비슷하다. 징크스가 개인적인 차원의 금기라면, 금기란 집단적인 차원의 징크스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 곳곳에 숨은 징크스 징크스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시험을 보기 전에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서 떨어진다. 지각하는 날은 상사가 먼저 와 있거나 급하게 찾는다. 아침에 지하철이나 출근버스를 놓치면 하루종일 일이 안 풀린다. 개를 치고 나면 꼭 큰 교통사고를 낸다”는 식의 징크스는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마치 물건에 붙은 상표처럼, 개인이나 집단에는 고유의 징크스가 따라붙기도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상황을 극복하거나 대비하기 위해 자기암시나 최면을 거는 것은 징크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징크스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은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선수나 기사(棋士) 등 직업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징크스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중 유명했던 징크스 중 하나는 아마도 골대를 맞추는 팅은 그 경기에 패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이 이 징크스의 희생양이었다. 또 월드컵 4강팀은 다음대회에서 예선탈락 한다는 오랜 징크스도 있다. 86년 월드컵에서 4강에 들었던 프랑스가 90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 한 것을 시작으로 94년엔 잉글랜드, 98년 스웨덴, 2002년 네덜란드, 2006년 터키가 차례로 예선탈락 해 이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다.
유사한 상징에서 비롯되는 것 징크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다. 일단 징크스에 걸리면 저항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징크스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심리적 불안상태에 휩싸이게 되고, 웬만하면 징크스를 지키는 편을 선택하기 십상이다. 징크스는 모든 사물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각각의 것에 대한 기피나 선택을 강요하는 형태를 띤다. 시 험을 보기 전 미역국에 대해서는 ‘기피’, 엿이나 찰떡에 대해서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미묘한 기피와 선택의 유래를 찾기란 힘들 다. 불교나 기독교, 혹은 토테미즘 같은 원시신앙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단순한 상징에서 생기기도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힘에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될 때 징크스는 위력을 발휘한다. 어부들이나 선원들이 그러하다. 인간은 용왕이나 바다 의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정해 의지하거나, 선원들의 특별한 행동 이 폭풍 등과 관련돼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촌에서 생선을 뒤집어 먹지 않는 것은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상징이, 배 위에서 휘파람을 불지 못하게 하는 것은 ‘휘파람=바람’이라는 유사성이 징크스로 발전하는 것이다.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는 ‘미끌미끌하다=미끄러진다’는 상징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 ‘4’가 한자문화권에서 꺼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4(사)=죽음’이기 때문이다. 혐오스런 것이나 낯선 것도 종교적인 맥락이나 상징과 상관없이 쉽게 한 사회의 보편적인 징크스가 된다. 이런 징크스는 특정 집단의 징크스보다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다. 검은 고양이나, 고양이 울음소리, 까마귀는 단순한 혐오감으로 징크스의 대상이 된 경우다. ‘까마귀를 보면 재수가 없다’거나 ‘고양이가 밤에 울면 불길하다’는 징크스가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집단이나 사회의 징크스는 개인의 생활 속에 투영된다. 하지만 징크스가 정확한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징크스로부터 많은 부분을 속박 당하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개인이 상위집단의 징크스를 받아들인 뒤 수용·변형 과 정을 거쳐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집단에 반영시키기도 한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 끊임없는 징크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징크스를 미신으로 간주하면서도 되도록이면 징크스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징크스가 논리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다는 자기방어의 심리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징크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왕성하게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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