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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무현'의49재단상'인연과 권력'

정치권, '권(權)'중독에서 탈피 '상생'해독에 나서길

김기홍 기자 | 기사입력 2009/07/10 [15:48]

'故노무현'의49재단상'인연과 권력'

정치권, '권(權)'중독에서 탈피 '상생'해독에 나서길
김기홍 기자 | 입력 : 2009/07/10 [15:48]
스스로 홀연히 하늘 터로 발걸음을 옮긴 ‘바보 노무현’이 이생에서 늘 꿈꿨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의 다음 인연 길목에 섰다. 그의 49재인 10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무섭게 난리치던 빗줄기도 이날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의 다음 세상 인연 길을 하늘이 축복이라도 하는 것일까, 모처럼 만에 밝은 햇살이 온 대지를 비추고 있다. 그의 49재와 유골안장 식인 이날 봉화마을엔 전국에서 모여든 추모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     © 김기홍 기자
필자는 가톨릭 신자며 그의 지지자도 아니지만 종교 논리 및 정치 성향을 떠나 윤회와 다음 생(生)이 만약 있다면 그가 ‘사람이 사람답게 세상’에 다시 인연 길을 이어 이번 生의 회한, 아픈 편린 등을 다 잊고 그 꿈들을 이루길 바라고 있다. 49재는 이번 생에서의 모든 인연을 사실상 끊는 남겨진 가족과 지인들에겐 슬픔이자 회한이지만 망자에겐 새로운 다음 생의 연(緣)으로 넘어가는 안식의 장일 수 있다. 그래서 49재는 또 다른 희비의 장(場)인 것이다. 
 
49재는 불교식 제사 의례로 좋은 세상으로의 윤회를 비는 것이다. 77재(七七齋)로도 불리는 이 의식은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 의례로 AD 6세기에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교의 조령숭배(祖靈崇拜)사상이 절충돼 생긴 것이다. 불교에선 망자가 죽은 날로부터 49재를 치르는 사이의 기간을 중유(中有), 중음(中陰)이라고 한다. 망자는 이 기간에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계가 결정 된다 보고 있다.
 
모든 중생은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의 여섯 세계를 윤회하는 가운데 이중 수라-아귀-지옥을 삼악도(三惡道)로 지칭하고, 이를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찬 세계로 보고 있다. 망자는 여섯 세계 가운데 한 가지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49재는 죽은 자가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비는 것이다. 49재를 올리면 망자가 불법을 깨닫게 되고 보다 나은 세상에서 태어나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고 한다. 49재는 그래서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망자와의 지난 인연과 관련해 일말의 위안점 하나 갖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바보 노무현’의 생전 업(業)과 공덕을 세상에 살아남은 이들이 가늠할 문제는 아니다. 그가 지난 생에서 부닥친 갖은 인연 길과 거기서 파생된 ‘희노애락’은 그 자신만의 나름의 ‘의미’자락인 것이다. 다만 그에게 당초 어울리지 않은 ‘옷’ 같았던 작금의 ‘정치판’에 인연 길이 주어진 것도 뜻이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 불행한 ‘업’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그는 생전 정치판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의미를 나름 접목시키려 했을지 모른다.
 
삼권분립체제하이지만 청와대와 대통령이란 권부의 최 정점 격 상징을 쥐었으니 아마 가능하리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권(權)’의 왜곡된 속성을 그도 몰랐던 걸까. 그에게 예기치 않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건 ‘경제 망친다’는 비난과 소통을 거부하는 오만-독선의 인물이란 힐난일색뿐이었다. 오히려 퇴임 및 서거 후에 그간 쏟아지던 비난은 온데간대 없이 사라졌고, 소통도 재개됐으며 애도의 물결도 상상외의 엄청난 파장을 이루었다.
 
쥐려고 했을 땐 잡히지 않던 것들이 온전히 모두 놓은 후에야 이뤄진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무릇 권력 자체가 업과 공덕의 학습 터인 셈이다. 지혜로이 잘 쓰면 공덕이 되지만 오만과 독선으로 잘못 쓰면 큰 독(毒)이자 업보(業報)가 되는 것이다. 그 권력도 짧은 기간 위임된 한시적인 것이어서 여한 없는 공덕의 장으로 쓰임새가 클 수도 있다. 그러나 ‘권(權)’의 중독성이란 게 직접 겪지 못한 이는 이해할 수 없듯 ‘청와대와 정치판만 들어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니 더할 말이 없다.
 
그도 권력의 최상부에 서 봤지만 직접 겪어보니 만만치 않았던 듯 퇴임 후 고향 봉화마을에 내려와서야 비로소 웃으며 “아 좋다”란 카타르시스성 일갈을 던진 것만 봐도 그 중독성 독(毒)의 무게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정치권의 고질적 구태인 ‘전임 밟기’와 기존의 현실 정치 벽에 그도 예외 없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제껏 전임 대통령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죽음’이란 극약 처방을 통해 스스로 완전한 해독에 나선 것이다.

그의 죽음이 정치권 관련자들에게 나름의 화두로 던져진 가운데 권(權)의 중독성에서 벗어나 ‘상생(相生)’이란 해독제를 스스로 처방할 수 있는 공덕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졌지만 너무 요원한 일일까. 이제껏 정치인들이 알게 모르게 쌓은 업보가 하늘을 찌를듯 하지만 것조차도 ‘권(權)’의 중독 깊이에 따른 그들 각자의 몫이자 부피일 뿐,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랄까.
 
우리는 짧은 삶을 살면서 갖은 인연을 스치지만 알게 모르게 ‘업’을 쌓기도 하고, 상대를 위한 공덕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업’을 쌓은 게 많다면 공덕으로 풀면 될 일이다.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것이며 그만한 공덕이 어디 있을 까. 정치인들에게 그 정도까진 바라지 않지만 그 ‘시늉’이라도 함 봤으면 원이 없을 듯하다. ‘바보 노무현’의 49재인 오늘 그가 다음 생으로 또 다른 인연의 길을 떠나는 가운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부디 첫 발걸음을 디디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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