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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8.15 광복절. 이와 더불어 잠시 조명되는 애국지사 및 그 유족들의 현 실태 및 애환. 이 순환 고리는 이 시대에 여전한 친일파 후손들의 득세 속에 8.15를 전후해서 잠깐의 분노 및 아쉬움으로 회자되다 다음 해로 또 넘어 간다. 해마다 늘 반복되는 이 순환성에 이젠 각 언론과 사람들도 별 의식 없이 동조하며 간다. 이는 친일청산을 제때 제대로 못한 대한민국의 지난 부끄러운 역사가 오랜 긴 시간의 터널 속에 함몰된 채 답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주권회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대한민국 애국지사들의 그 후 삶과 가족들의 애환이야 2009년 작금의 현실에도 모두 투영되고 있으니 굳이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행이나마 뒤늦게 진행 중인 친일청산 움직임 속에 친일파 후손들의 반발 소식은 실소와 분노까지 자아내게 한다. 친일파 조상들의 기여(?)덕에 여전히 사회 요직과 부(富)를 세습하면서 그 부끄러운 유산(?)을 끌어안고 발버둥 치는 꼴이니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이보다 더할 까. 새삼 그 친일자손들의 면면을 여기서 논하고 싶진 않다. 인터넷과 각종 정보채널의 발달로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 중심 무대에 친일 자손들이 거의 포진하고 있으니 다만 답(?)이 없을 뿐이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 한다’는 기괴한 테마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회자될 뿐이니 오호 통재라. 세상에 영원한 게 없듯이 만약 국가적 위기상이 재차 발발 한다 가정할 때 이제 누가 대한민국 수호에 나설 지 의문이다. 사필귀정, 인과응보가 만고의 진리라 생각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친일 후손들의 득세 상을 볼 때 이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끔 들곤 한다. 외국의 전례로 볼 때 부역자의 경우 사형 등 최고 형벌을, 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적 대우 및 예우는 거기에 걸 맞는 명예와 보상 등으로 국가 기강 및 정신을 올곧게 세웠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고 기괴한 대한민국(?)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선친도 소위 독립유공자다. 선친은 젊은 날 대구사범 재학 당시 학생 신분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다 검거돼 대전에서 옥고를 치르셨다. 선친은 생존 시 가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대전에서 옥살이 중 부모님이 면회 오셨을 때 어머니가 흘린 눈물을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불효한 것에 대한 통한이 평생을 이었다”고 소회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혈기 넘친 젊은 시절이었고, 보상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평생 통한으로 이은 것을 대신할 명예(?)로 받아들일 만큼은 아닌 서글픈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하신 것이다. 선친은 돌아가신 후 몇 년 전 먼저 세상을 뜨신 어머니와 함께 대전국립현충원에 합장됐다. 필자는 생전에 그리 통한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선친을 함께 모시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럽고 한탄스러우나 어쩌는가. 대한민국 유공자 법(?)이 그러하다 하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주변의 혹자들은 얼마나 좋고, 자랑스러운가 하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돌아가신 후에 그런 게 모두 뭔 의미가 있을 까 싶다. 선친을 생각하면 할아버지-할머니 곁에 못 모시고 대한민국 법(?)에 밀린 필자가 내내 불효의 통한으로 살아생전 선친의 부모님에 대한 한(恨)을 대 이을 형국이기 때문이다. 매년 무의미하게 일회성 행사 중 하나로 반복되는 8.15 광복절. 아직은 요원한 일 같지만 진정한 친일 잔재 청산 후 제2의 81.5 광복절 행사로 거듭났음 하는 바람 하나 던져 본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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