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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브레이크뉴스의 정체성이나 편집방향과 상치될 수 있으며 저작자의 주관적인 주장임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전교조의 한복입기’는 그 의도와 목적에서 공산당식 혁명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와 행동과 양식을 함께 한다는 동지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복은 대한민국의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농민)가 입는 옷, 혁명가는 바로 그들의 옷,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해방 후 남로당 이론가들은 바로 이 점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소련혁명사를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노동자 농민을 위하는 자는 그들과 모든 행동을 함께 하라. 옷도 그들의 옷을 입고, 음식도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잠도 그들이 자는 곳에서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은 1870년대 브나로드 운동 당시의 언어들이었다. 그리고 조선공산주의자들도 당원들에게 한복을 강요하였다. 화이트칼라일지라도 양복을 던지고 노동자 농민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들은 남로당원들에게 이렇게 교육시켰고, 실제로 당시 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붉은 지식인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1945년에서 1949년 6.25전쟁 전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민중 속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브나로드 운동을 벌이던 러시아 혁명가의 외침이, 조선 공산혁명가의 시각으로 변형된 것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브나로드 운동과 조선혁명사의 관계를 재조명해 본다. 러시아 혁명기, 공동체 미르(mir:러시아의 독자적인 농민자치공동체)를 기초로 하여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믿는 지식계층이 민중계몽을 위해 농촌으로 파고들었을 때에 '브나로드'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 슬로건 아래 1873년에서 1874년을 정점으로 하여 약 2,500명에 달하는 러시아의 진취적인 젊은 지식인층이 교사 ·의사 ·점원 ·노동자가 되어 농민에게 나로드니키(Narodniki)의 혁명사상을 선전하였으나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1874년 가을까지 많은 선동자들이 검거되어 이른바 ‘193인 재판’에서 처벌을 받았다. 이 운동은 농본주의적 급진사상으로 발전하는 1870년대의 혁명적 나로드니키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운동의 영향을 받아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브나로드운동이 농촌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후일 ‘예술도 혁명의 도구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KAFF 문학이 붕괴되고, 지식인들은 순수예술을 지향하게 되었으나, 혁명의 대상과 주체를 노동자 농민으로 보는 좌익들은 이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농민이 90%였던 당시 대한민국. 농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좌익들은 기어이 지식인들의 옷을 벗기고 한복으로 나타나는 농민의 옷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한복의 슬픈 역사였다. 한복…. 이 아름다운 전통의 우리 옷이 지금은 전교조와 민노총, 민노당 좌익들로 하여금 혁명의 붉은색을 띠게 되었다. 학교,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번져나는 곳에 전교조 교사들이 붉은 혁명을 꿈꾸며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 정결한 스승의 옷이 아니라 노동자의 옷으로 그들은 색깔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미군철수를 외치며 분필을 던지고 거리로 나가고 있다. 글쓴이: 정재학(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사무총장, 전추연 공동대표, 시인, IPF 국제방송편집위원, 데일리안 편집위원, 인사이드 월드 논설위원, 전남자유교조 고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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