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출범 이후 3년 반 동안 대세론을 확장했고, 특유의 ‘원칙과 신뢰’는 변절과 말 바꾸기의 한국정치사에서 독보적인 자산으로 자리매김 됐다. 게다가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쳐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던 5년 전과 달리 박 전 위원장은 사실상 추대와 다름없는 경선과정을 거쳐 본선행이 예고된 상태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이후 단 한번도 ‘유력 대권주자’의 지위가 흔들린 적이 없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 ‘준비된 대통령’으로 거론돼왔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의 실패’를 발전적 모델로 삼았음을 그의 출마선언문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와 법질서를 강조했던 것을 국민과 복지,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강조함으로써 ‘전통 보수’의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그의 선언문에는 ‘국민’이란 단어가 무려 80차례나 나왔다. 오직 국민만 생각하고 국민만 바라보며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DNA는 이미 육영수 여사 서거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동안 검증된바 있고 여기에 더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심은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 무한한 신뢰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 의원들은 물론이고 비주류조차도 박 전 위원장이 유일한 대권후보이자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친박의원들은 당선을 의심하지 않고 있고 비주류는 ‘확실한 당선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야권은 지난 2002년 이회창-노무현 구도보다 오히려 쉬운 구도라며 진보정권의 출현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굉장한 역설이다. 역대 최고의 보수 유력후보를 두고도 더 강해지는 야권의 파이팅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박 전 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강점만큼이나 많은 약점 때문이다. 우선 박 전 위원장은 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연거푸 대선주자로 노출되는 동안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경제발전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군사쿠데타와 독재, 인권탄압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진보진영과 젊은 유권자들의 반감은 박 전 위원장의 견고한 지지층만큼이나 견고한 비판층을 형성하고 있다. 부동의 1위라는 지지층의 지역적 불균형도 문제다. 박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유권자가 전국에서 인구비율상 가장 많다는 대구·경북은 차치하고라도 부산·경남의 분위기가 예전만하지 못하고 가장 많은 유권자가 존재하는 서울과 수도권 민심은 박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호남의 경우에는 박 전 위원장의 득표 계산에서 제외해도 될만큼 동토의 땅이기도 하다. 또 경선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사실상 추대행사에 불과한 당내 경선으로 인한 사당(私黨)화 논란과 흥행실패, 당내 반대세력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정치력, 비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증폭되는 불통의 이미지는 박 위원장의 대세론을 언제든지 허물어뜨릴 수 있는 뇌관이다. 또한 흥행 보증수표를 받은 민주통합당의 경선과 야권연대,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과 각축을 벌이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출마는 박 전 위원장의 ‘이번엔 꼭’이라는 대권의지를 무참하게 만들 수 있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 후보 중 부동의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의 당선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상황이 그때와 너무나 닮은 박 전 위원장이 이회창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보수세력과 정권연장과 정권교체를 갈등하는 중도층을 어떻게 설득하고 포용하느냐에 따라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 대통령’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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